라떼의 낭만은 어디로? 어릴 적 기차 여행의 추억과 KTX 예절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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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KTX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떠났다.
서울에서 남쪽 끝까지 이어지는 긴 여정. 창밖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다 문득 옛 기억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부모님 손을 잡고 무궁화호나 새마을호를 타고 고향을 오가던 그 시절의 기차는 지금의 KTX와는 너무도 다른 풍경이었다.
기차는 느렸다.
하지만 그 느림은 여유였고, 그 안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서로 간식을 나누고, 같은 목적지로 향하는 이웃처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도시락을 먹으며 창밖 풍경을 이야기하던 아저씨,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향 가니 좋겠네" 말 건네던 할머니, 커다란 보온
병에 담긴 따뜻한 커피를 건네던 아주머니까지. 그 안에는 따뜻한 온기와 사람 냄새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KTX는 조용하다.
아니, 조용함을 강요당한다.
이번 여행에서도 "실내에서는 대화를 자제해 주세요"라는 안내방송이 수차례 흘러나왔다.
‘다른 승객들의 불편을 초래하는 대화 소리에 대한 민원이 많다’는 설명이 덧붙여졌고, 몇몇 승객은 옆사람과 속삭이듯 대화를 나누는 것도 조심스러워했다.
예전이라면 서로 어깨를 맞대고 수다를 떨었을 텐데, 지금은 마치 도서관 열람실에 앉은 기분이다.
내가 타야하는 칸을 잘못타고 옮겨가는데 삶은 달걀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실내에서 음식을 먹어도 되겠지만 내 느낌에는 조금은 조심스러울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해는 간다.
모두가 피곤하고, 빠르고 조용한 이동을 원하며, 스마트폰과 이어폰으로 자신만의 공간에 머무르려는 시대다.
예절은 시대에 따라 변하고, 조용함을 원하는 승객의 권리도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건 없을까?
기차는 단순히 A에서 B로 이동하는 수단 그 이상이었다.
타인과 마주하고, 나누고, 교감하던 공간. 시골 장터에 가듯 구수한 이야기가 오가던 그 낭만의 공간이 이제는 조용함만이 미덕이 된 곳이 되어버렸다.
어린 시절의 나는 기차를 타면 항상 누군가와 말을 섞었다.
처음 보는 이들과도 금세 친해졌고, 고향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떠들었다.
그리고 그런 순간이 ‘여행’의 일부였다.
그렇다고 지금의 KTX를 비난할 수는 없다.
시대가 바뀌었고, 요구되는 예절도 달라졌다.
KTX는 빠르고 정확하며, 현대인의 효율적인 이동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스마트폰 한 대면 시간을 보내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많은 정보를 얻고, 더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셈이다.
하지만 가끔은 그 옛날 기차가 그립다.
느릿한 속도 속에서 천천히 움직이던 세상, 모르는 사람과도 쉽게 정이 들던 시절. 요즘 아이들은 기차를 타며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조차 없다.
눈은 핸드폰에 고정돼 있고, 귀는 이어폰에 막혀 있다. 그 속에서 ‘사람’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물론 지킬 예절은 지켜야 한다.
다른 이에게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 조용히 하는 것, 그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모두가 예민해진 시대’라는 말처럼,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조심하다가 인간적인 온기까지 잃고 있는 건 아닐까.
기차 안에서 나눴던 말 한 마디, 건넨 과자 한 봉지가 그렇게 그리운 이유는, 그 속에 있었던 따뜻한 ‘사람’ 때문이었을 것이다.
앞으로도 KTX를 타겠지만, 나는 아마도 계속 창밖을 바라보며 그 시절 기차 여행의 낭만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릴지도 모르겠다.
"라떼는 말이야, 기차 타면 이야기도 하고, 도시락도 나눠 먹고, 노래도 부르곤 했어…"
그 추억은 이제 사라졌지만, 마음 한켠에선 여전히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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